인사

직접 아는 얼굴이 아닌 상대라고 해서 인사를 하면 안된다는 규범이나 규칙은 없다. 인사에 인색해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득이 될 일도 없다. 여러 천만이 살아가는 땅 위에 어쩌다 같은 건물에 살게 된 이웃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다면, 혹은 하지 않는다면, 대체 인생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인사

告白

서울에 돌아와서 한동안은 외출이 싫을 정도로 짜증나는 경우가 많았다. 거의 모든 종류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불성실하게 보였고, 거의 모든 행인들이 무례하게 느껴졌다. 생전 모르는 이들과 싸우는 일이 없었는데, 서울에 돌아와서 여러 달 동안, 두세 주에 한번씩 정도는 꼭 모르는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혹은 싸우곤 했다.

그러고 좀 더 지나서, 물론 서울 생활에 다시 익숙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그러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싸우게 되면 아무리 내가 정당하다고 해도 결국 한두가지는 반드시 상대방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그렇게 싸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달라질 것도 없고 심지어 나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서로 기준이 너무나 달라서— 상대에게 핏대를 올린들 손해보는 것은 나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이 좋기는 커녕 모나기가 그지없는 성격이지만, 사람 좋은 양, 웃어넘기자 싶었다.

오늘도 예전같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일을 이어서 둘이나 겪었다. 순간 흥분되는 기분을 느꼈지만, 넘기자 했다. 불쾌는 순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넘기기를 잘했다 싶다. 내 흥분을 아낄 수 있었고, 처음 보는 이들에게 험한, 격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들의 몫일 뿐이다. 그들의 불행에 스스로를 관여시킬 필요는 조금도 없다. 그렇게 얼굴 대하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 이기적으로 정신을 지킨다.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살아가기 위한 작은 방편일 뿐이다.

서울은, 연약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용이한 곳이 아니다.

告白

봄비가 들리는 밤

오늘은, 어제에 이어 공기가 맑았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이 정도로 계속되는 걸 보면, 이 비가 그치고는 공기도 맑을테고 또 봄도 이제 완연해지려나 싶다.

요즘은 주저없이 공기를 들이킬만한 날이 별로 없는 탓에 필요한 이상의 외출은 되도록 피하고 대신에 어제나 오늘처럼 깨끗한 날이 있으면 무조건 한참을 걷곤 하고 있다. 어제는 너무나 깨끗해서 평소에 공기가 그리 나쁘지 않은 날에도 보이지 않던 풍경들마저 저 멀리 보였다. 불쾌하지 않은 숨을 쉬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는 사회는, 분명 행복한 사회는 아닐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제는 그저 그대로 즐거운 하루였다.

별로 넓지도 않은 우리집에는 벌써 공기청정기를 두 대나 돌리고 있다. 거의 24시간 쉬지 않고 돌리는데, 이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번씩 필터 청소를 할 때마다 필터의 색이 변한 것에, 그리고 잔뜩 쌓인 먼지 —사실 눈에 보이는 정도의 먼지는 문제가 아닐테지만— 에 아연해지곤 한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공기질을 체크하고, 필요하면 마스크와 미세먼지의 부착을 억제해준다는 스프레이를 준비하는 생활은, 권할만한 것은 아니다. 혹자는 이런 나에 대해서 신경질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분명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먹는 것, 마실 것, 들이킬 것들에 대해서 가능한한의 노력을 들이는 것은, 살아가는 행위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먹고 죽지 않으면 보약’이라는 식의 야만과 폭력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말이다.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이제 추적추적 빗소리만 들린다. 가뭄이 심각해서 큰일이라는 뉴스를 본게 며칠 전인데, 이 비로 제법 해갈이 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결국 인간은 가뭄이 들면 비를 기다려야 하고, 밤이 오면 아침 해를 기다려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봄비가 들리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