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간다

십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아침 출근길에 한강을 운전해서 건너다가 내가 건너고 있던 다리의 북단의, 늘 보는 익숙한 풍경이 먼지에 덮여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지 얼마 아니었던 그 날, 나는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황사는 물론 태고적부터의 자연현상이지만, 20세기의 마지막 이삼십년 동안, 적어도 서울에서 강의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먼지 바람이 불었던 적은 없었다. 더해서 작금의 황사는, 그저 단순한 모래바람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서울을 떠났었다. 강산이 변할 세월이 지나, 자의도 타의도 아닌 애매한 입장과 상황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강산이 얼마나 변한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은 분명 변해 있었다. 태어나고, 가족과 친구가 있는 땅에서 여러 달을 이방인으로 지냈다. 한편, 내게 떠날 이유를 만들어주었던 모래바람은, 이제는 어색함 없는 단골이 되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눈앞을 스치곤 한다. 오늘은 하루 내내 온 천지가 먼지였다.

사람은 참 대단한 적응의 동물이어서, 이제 겨우 십년 조금 넘은 이 먼지바람에도, 많은 이들이 마스크 하나 없이 스스로의 폐를 필터 삼아 공기를 걸러주고, 하릴없이 이웃 탓만 한다. 서쪽의 이웃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의 하늘이 티없이 맑은 것이기만 했다면, 그래도 우리는 오늘처럼 매캐한 숨을 쉬고, 따가운 눈을 비볐을까.

인공의 힘으로 자연에 맞서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분명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 그러한 인공을 누리기 위한 비용을 쉬이 치룰 수 있는 인구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깨끗한 물과 공기, 유해한 성분이 덜한 농산물, 건강하게 키우고 건강하게 생산된 축산물. 어떤 사회에서는 누구나 누리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어느 곳에서는 사치가 된다. 마실 물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을, 삼사십년 쯤 전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상했을까. 그리고 이제 이렇게 다시 여러 십년이 지나면, 이제 막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 여러 십년 뒤의 세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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