呉世龍 先生을 기리며

며칠 전에 부고를 하나 들었다. 일본에 계신, 잘 아는 어른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벌써 두어 달 지난 이야기라고 한다. 급한 마음에 사모께 전화를 드렸더니, 내 목소리를 알아보시고는 금새 울먹이신다. 할 수 있는 것이, 전화밖에 없어 죄송했다.

돌아가신 분께서는 위암이셨다. 위를 절제해내고 몇 년을 더 사셨다. 지난 여름에 사모께서 혼자 서울에 오셔서 잠깐 뵈었을 때만 해도 조금 힘이 돌아오시면 가을 쯤에 서울에 오실 계획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세도 있으신터라 돌아가실 날이 그리 멀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어도, 그런 말씀을 들은 터라 조금 더 계실 줄 알았다.

呉世龍 선생께서는 1939년 생이셨다. 나기는 경상도 땅에서 나셨지만 네 살 무렵인가 일본으로 가셨다고 한다. 해방을 맞은 것은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였다. 어린 시절 당신의 할머니 손에 자라신터라 경상남도 억양이 강하게 남은 ‘조선어’를 쓰셨다. 말로 치면야 일본어가 훨씬 편하실테지만, 나와 말씀하실 때 일본어를 사용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릴 적에 총명하셨던 모양으로 워낙은 북한으로 가서 김일성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셨다고 한다. 어떤 사정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북한행이 좌절되시고는 <조선신보>(‘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조총련)’에서 발행하는 신문) 미야기지국의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다. 형제분들과 당신의 모친께서는 진작에 북한으로 ‘귀국’하신 터였는데, 1996년에 모친께서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곧 한국 국적을 취득하셨다고 한다. 한국인인 내게 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으셨지만, 가끔 비치시는 말씀들 사이에는 북한의 체제와 권력에 대한 답답함과 한심함이 배어나오곤 했다.

처음 선생을 뵙게 된 것은 어떤 작은 모임에서였다. 당시에는 아직 대학원 석사과정중이었는데 내가 ‘재일 조선인’(나는, 한국에서 흔히들 ‘재일교포’로 칭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재일 조선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굳이 여기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집단의 역사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비롯된 생각이다)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어느 교수가 자신이 아는 어떤 모임에서 어떤 ‘재일 조선인’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는데 같이 가 보겠냐고 제안해 주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 그 모임에서 들은 선생의 이야기는 그리 인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야기를 비롯한 일본 동북 지방의,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과 유적들에 대한, 선생 나름대로 수집하신 이야기였다. 나로서는 그리 관심이 가는 주제도 아니었고, 선생의 말씀들도 대개는 추정이나 추측에 불과한 것이라 대부분을 듣고 그냥 흘려넘겼다. 하지만 그렇게만 그 인연을 버릴 수가 없었다. 당시의 나는 석사 논문의 방향은 정했다고 해도 보다 구체적으로 주제를 정해가는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터라 직접 ‘재일 조선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또 묻고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내가 먼저 청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뒤부터 한동안은 거의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말씀을 듣고, 녹음도 하곤 했었다. 주로 센다이 등의 동북 지방의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해방 직후의 상황,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부락, 그곳에서 있었던 화재 사건, ‘우리학교’를 만들기 위한 고생, 예전 한국 유학생들 등의, 생생하면서도 아득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결국 이 이야기들을 석사 논문에 사용하지는 못했다.)

선생께서는 자그마한 한국 식료품점을 하시면서 생계를 꾸리고 계셨다. 몇 달에 한 번씩 직접 한국에 오셔서 라면이나 반찬, 조미료, 김 같은 것들을 사 가시기도 했고, 양념된 갈비 같은 것들을 파셔서 이따금 고기를 사러 오는 손님들이 있으면 직접 고기를 썰어 양념에 버무려 건네주시는 것을 보곤 했다. 그래서 늘 날고기 냄새가 나곤 했다. 비위가 약한 편이었지만 그 냄새가 역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국의 재료들을 가지고 직접 김치를 담그셔서 파시기도 했다. 두어 번 얻어 먹어보았는데 맛이 있는 시원한 김치였다. 한동안은 ‘김치 교실’도 요청이 있으면 부정기적으로 여시곤 했다고 들었다.
건강을 다치시고 워낙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기도 하여 벌써 이삼년 전에 가게를 그만 두셨다. 암 진단과 수술 후에는, 그 전까지만 해도 혼자 지키시던 가게에 사모도 나오셔서 늘 두 분이 함께 가게를 지키셨다. 선생께서는 힘이 빠지시면 가게 안쪽의 작은 방에 누우시는 경우가 잦아 대개 사모께서 앞에 나와 계시곤 했는데, 병 수발에 가게 운영에 힘이 드시고 마음도 지치셨는지, 가끔 찾아가면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반가워하시는 느낌이었다. 지난 지진 이후에 센다이에 돌아가서 인사를 갔을 때는, 쌀과 반찬 같은 것을 챙겨주셨을 뿐만 아니라, 지진 당시의 사고로 —지진 당시에 나는 도쿄에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의 세탁기가 넘어져서 온 집에 물이 넘치는 사고가 터졌었다— 살던 아파트 관리회사와의 사이에 법적인 문제가 생겼는데, 선생께서 소개해주신 변호사 덕에 별 일 없이 잘 마무리가 되기도 했었다.

선생께 정기적으로 다니던 시절에 들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에 인상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다. 선생이 국적을 바꾸시고 처음 한국으로 오실 때였다고 한다. 서울의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하려는데, 수속 창구가 한국인과 외국인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순간 어찌할 바를 모르셨다고 한다. 국적으로야 분명 한국이고 갖고 계시던 여권도 한국의 여권이었지만, 평생 처음 밟는 낯선 땅에서 주저없이 ‘한국인’이라고 쓰여진 곳에 줄을 서지는 못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길에 일본의 공항에서, 역시나 마찬가지로 일본인과 외국인으로 나뉘어져 있는 입국 수속 창구를 보고, 다시 한 번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셨다고 한다. 평생을 사시고, 집과 가족, 친지 등 자신의 모든 생활이 있는 땅에 돌아오면서, 그러나 일본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외국인으로 인식할 수도 없는 그런 기분이셨을까. 인상깊게 들었지만 더 자세히 그 순간의 기분이나 감정, 생각 등을 여쭈지는 못했다. 내가 부족한 탓이었겠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화 하나가, 실은 내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화 하나가,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란 나와 같은 존재가 ‘재일 조선인’들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물론 학술적으로 논리와 주장을 가지고 무언가 글을 쓰고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세계에 대한 인식의 안일함과 그런 안일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 채로는 근본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배운 것 같았다. 그러고도 나는 어떻게 논문을 쓰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박사과정에 진학해서는 도저히 ‘재일 조선인’을 더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느끼게 된 것도 어쩌면 저 일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지금 든다.

사모께서 말씀이, 선생이 남기신 유언으로 화장한 유골을 현해탄에 뿌려달라도 하셨다고 한다. 선생 생전에 현해탄을 몇 번이나 보셨을까. 일본의 동북 지방에서 평생을 사시고도 아무 연고도 없는 큐슈 넘어 부산 땅이 보이는 바다에 잠드시길 원하셨다고 한다. 어떻게 들으면 진부하게도 들리고, 감상적인 이야기로도 들을 수 있지만, 선생을 뵙고 알았던 나로서는 그 말씀이, 그 유언이 너무나 아프다. 평생을 ‘자이니치’로 사시고, 이제 돌아가시고도 ‘자이니치’로 남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어찌 감히 그 뜻을 알 수 있으랴.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화장은 이미 마치신 모양이고, 해가 바뀌고 나서 날이 조금 풀리면 좋은 날을 잡아서 큐슈로 가실 예정이라고 하신다. 사모를 직접 뵙는 것은 너무도 마음 아픈 일일테지만, 일정이 맞아 나도 가시는 길에 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아직은 생각 뿐이기도 하고, 가족 분들만으로 치루시고 싶어하실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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