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덥다라는 형용사가 무색할 정도의 더위가 계속된다. 정말, 덥다. 당연히 몸도 마음도 지친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어쩌랴. 덥다고 계절을 되돌릴 수도, 앞당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 더운 밤에도, 시간은 착실하게 흐른다. ‘어느새 가을이구나’ 할 날도, 실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게 더웠던 오늘 오전의 일이다. 점심때 본가에 가면서 동네 수퍼에 들러 수박을 한통 샀다. 그렇게 마음을 낸 것이 화근이었을까. 평소 한산한 모양만 본 수퍼가 제법 붐빈다. 그런데 계산대에는 계산해주는 점원이 한명뿐이다. 자연히 줄이 늘어진다. 수박 한통만 잽싸게 계산해서 본가로 향하려던 내 계획이 조금 틀어진다. 줄이 확실하게 서 진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 언저리에, 서로 눈치보며 서 있는 그런 식이었다. 갑자기 옆 계산대에 점원이 들어서서 계산을 해 주겠단다. 계산을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서 두번째로 차례를 기다리던 내 앞의 아저씨가 당연히 그쪽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제일 나중에 온듯한 어느 아줌마가 불쑥 먼저 간다. 아저씨는 내 앞에서 멈칫하며 뭐라도 웅얼거린다. 잠깐 망설였다. 한마디 할까. 말걸 그랬다만, 결국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순서를 지키시죠. 무슨 소리냐는듯이 엉뚱하게 뒤돌아보던 아줌마가 성질을 내며 뒤로 간다. 한마디 한 나를 향해 시비조로 왜 사람을 무안하게 하냔다. 순서대로 계산하는게 당연하지 않냐고 대꾸했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기회가 오면 잡는게 사람이지, 그걸 그냥 기다리고 있으라고?”

참 대단한 기회다 싶기도 했다만, 화가 났다. 저보다 앞서 와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다 바본가. 그 사람들이 뭐가 덜 떨어져서 기다리고 서 있는가 말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순서를 지킬 일 아닌가. 그보다, 아니 백보 양보해서 실제로 저 말같지도 않은 말처럼 생각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런 말을 입밖에 내는 천박함은 대체 뭐며, 기본적으로 옆에 서 있던 이웃들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화가 났다. 아무리 세상이 이상해졌기로서니, 그리고 날이 이렇게 더워 서로 날카로와져 있기로서니, 상식과 배려를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해서 당당하게 저 따위 말이 튀어나오는 세상이란 말인가. 화가 나서 말싸움을 했다. 몰상식한 인간이라고 나도 쏘아붙이고, 저 쪽도 지지 않았다. 남 싸움 구경은 했어도 관객들 두고 싸워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돌아온 서울에서는, 참 싸울 일도 많다. 내가, 날카로운 것일까.

더운 밤, 오전의 일을 돌이킨다. 불쾌한 기억이어서가 아니다. 저 아줌마의 저 대사가, 나는 아직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수퍼에서 남들 제치고 몇분 먼저 계산하게 되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 스스로 배려도 상식도 없는 非인간이 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까? 모르겠다. 뭔가 끄적이면 정리가 될까. 그렇게 노트북을 열고 첫머리에 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싶다.

Advertisements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