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 백년 후

키타노 다케시 –이 자가 뭐가 그리 대단한건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가 이름을 걸고, 그러나 정작 무식한 다케시는 한 마디도 책임있는 소리는 않는, ‘TV 태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개 무식이 철철 넘치는 사람들이 나와서 정치, 사회적인 현안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거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미야케 히사유키(三宅久之)라는 자가 있다. 극우에 가까운 정치적인 입장을 가진, 소위 언론인 출신이라고 하는데, 대개 그 무지와 무식이 좀 지나친 인물이다. 나이가 80대에 접어들었을 정도로, 그 정도 살면 그저 주워 듣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무지에서 벗어날 법도 한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주변에 사람이 없나보다 싶다.

대개 우연히라도 이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오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데 –굳이 사서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해칠 일은 없으니 말이다– 어제는 어쩌다 그냥 틀어놓고 말았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분쟁과 관련한 토론 –일방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매도하기만 하더라만– 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인이 한 명 패널로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앞서 이야기한 미야케라는 자가 난데없이 한국인 패널에게, ‘그런데 한국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요즘(!)의 세태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맥락과 전혀 상관도 없는 이야기에 보던 나도 어리둥절하는데, 이어서 더 기가 막힌 소리가 나온다. 요컨대, ‘이씨조선 –아직도 이런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일본인이 많다. 이도 실은 무지의 소치이긴 하다– 이 얼마나 봉건적인 악정이었는지 아느냐. 그 이씨조선의 지배가 끝나게 된 것은 일본 덕이 아니냐’라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워낙에 맥락과 관계도 없이 튀어나온 돌발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한국인 패널도 별 말이 없었고, 이내 방송의 진행과 더불어 발언 자체가 묻혀버렸다. 그렇기는 하지만 저런 무지에 가득찬 말이 공중파 방송에서 튀어나오고, 그게 그대로 방송이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또 일본의 수준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명치유신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 후에는 군국주의로 이어졌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대외 침략의 연장에서 태평양 전쟁, 2차 세계대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일본인들에게는 이러한 의식 자체가 없다. 즉, 후발이긴 했지만 철저한 노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나아가서는 열강의 반열에 들어섰는데 그만 군부의 폭주로 일본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인식 자체가 거의 없다. 명치 이후 일본 사회가 잘못된 길을 들어선 것은, 길게 잡아도 1930년대 이후의 일이고,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명치 연간과 그 결실이 피어나던 태정(大正) 연간은, 오히려 근대 일본의 빛나던 시기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바 료타로라는 소설가이고, 최근 NHK에서 드라마로 만든 시바의 소설, <<언덕위의 구름>>은 바로 그런 시바의 역사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이 시바의 소설은 너무도 유명하여, 이런 식의 역사관을 전후 일본 사회에 조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시바 사관(史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샜는데, 요컨대 이런 인식이 지배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저 위에서 언급한 발언과 같은 말이 성립하기도 하는 것이다. 동양에 있어서 근대화의 선구였던 일본이, 뒤쳐진 옆 나라를 ‘보호’하고, 나아가서는 ‘점령’한들,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영토 확장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일본에게 다른 길을 선택할 여지가 있었는가 말이다. 신생 열강이었던 일본이 식민지를 획득하는 것, 게다가 러시아 등의 위협에 대비하여 대륙 진출을 위한 요충지로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것은, 일본의 자국 방위를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라는 논리이다. 따라서 평균적인 일본인에게 있어서 위의 발언은 전혀 이상할 것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그대로 방송되었을테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식민지 지배 등을 언급하는 노골적인 발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기시 되었다고 하는데, 작금의 일본 미디어의 분위기가 과도하게 오른쪽으로 치우치고 있는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지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도, 저런 발언이 얼마나 철저한 무지에 입각한 것인지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먼저, 저 발언의 주체가 대체 얼마나 조선 왕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일이다. 저 나이의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젊은 세대들에 비하면 한반도나 중국 등에 대한 비교적 상식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지식이라는 것들이 대개 명치 이후의 근대 일본에서 생산된 것들에 기초한 것들이고, 근대 일본이 조선이라는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저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탈아입구(脱亜入欧)론’, 즉 서양은 문명이고 일본은 반개(半開), 중국과 조선은 야만이라는 인식에 비추어 보아도 자명하다. 따라서 한반도에 대한 지식도, 실은 매우 편향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편향적인 지식은 무지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다. 저 위의 발언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또한 논리적으로도 도통 말이 안되는 소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후 일본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만주사변 이후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같은 논리라면, 그 군국주의로부터 일본의 민중을 해방시켜준 미국의 핵폭탄은, 일본으로서는 감사할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이 얼마나 많은 인명 –그 중에는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다–을 앗아갔으며, 아직도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군국주의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해도, 바로 그 군국주의의 끝을 당겨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수십만의 목숨이 순식간에 사라진 참상을 고마운 일로 인식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조선 왕조의 악정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그래서 한반도의 대다수의 민중들이 고통과 핍박을 받으며 살아갔다고 해도, 그 조선 왕조의 악정을 종식시켜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타인의 억압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찬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그 일제의 한반도 통치의 실상이 어떠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닌가.

다시 위의 발언으로 돌아가자면, 사실 논리적이지도 않은데다가 아마 별로 탄탄한 지식에 기반한 것도 아닐 가능성 –이건 그저 나의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이 높은, 굳이 반응할 가치도 없는 말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말이 상징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에서의 역사인식의 문제는 아직도 이 지역의 커다란 과제로 남아있고, 당분간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할 것 같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런 일본인들의 인식수준을 탓할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는 있는가하는 점이다. 지난 8월 15일을 전후해서 NHK에서 방송한 특집방송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주로 젊은 세대를 모아놓고 서로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 방송이었다. 그 말미에, 패널로 참가한 일본인 대학교수가, ‘일본인은 무지한 것이 문제이고, 한국인은 일방적인 지식만을 맹신하는 것이 문제’라는 요지의 정리 발언을 했다. 무지와, 일방적이긴 하지만 나름의 지식을 같이 취급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편향적인, 혹은 일방적인 지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무지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1910년으로부터 꼭 100년째인 오늘까지 한국과 일본이 속한 지역에 존재하는 역사인식과 과거 청산의 문제는, 오로지 일본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문제해결을 위해서 일본 사회가 전진할 필요가 있는 만큼, 한국 사회도 전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긴 글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된 어떤 늙은이의 바보같은 발언에 무작정 분노하기만 할 수 없는 것은, 저런 무지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자각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19세기 말 이후, 비록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고 하지만, 일본도 한국도 그저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뛰어왔다. 그리고 그 짐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총과 칼을 앞세운 서구 열강 앞에서, 당장의 생존과 독립을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다고 믿어버린 근대 초기의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에게, 조금 더 시간적, 그리고 심리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동아시아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지 모른다. 21세기 초엽의 오늘, 같은 동아시아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100여년 전의 선배들이 누리지 못한 여유가 있다. 그리고, 여전히 무거운 짐은 남아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누리는 여유에 대한 책임도 있을 것이다. 그 책임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무지로부터, 혹은 일방적인 지식에의 맹신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원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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