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여섯살때 일이다. 외가쪽으로 증조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셨었다. 그 시절의 외갓집은, 일제 말기인지, 해방 직후인지에 지은 집을 다시 증축한 집이라 어두운 긴 복도들이 일층에도 이층에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얼마나 자주 외가에 갔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외가에 갈 적마다 일단 들어서면 그길로 일층 어둡고 선선한 복도 끝의, 역시나 어둡지만 꽤나 널직한 방에 계시는 증조할아버지께 절을 드려야 했다. 어린 나는 그 복도가 싫고, 그 방이 싫었고, 무엇보다 둥그런 옛 뿔테 안경을 끼고 두루마기를 두르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무서워 그 통과의례를 늘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매번 어머니 손에 매달린채 할아버지를 뵙고 절을 드리곤 했다.

증조할아버지는 내가 여섯살이던 해에 돌아가셨다. 외가의 종가가 있었던 대구에서 돌아가신 탓에 할아버지의 장례에 어린 나까지 가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다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은 확실하게 있고,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죽음’이었다. 그리고 여섯살의 나는, 내 기억에도 그러하고 어머니도 그리 기억하시는 모양이지만, 일주일 정도 침울해했다.

할아버지를 기려서 그런 것은 아마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의 ‘교류’라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터이니 어린 나에게 대단한 상실감이란 것이 있었을리는 없다. 침울했던 것은, 여섯살짜리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죽음’때문이었다. 그 때 내 머리 속에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던 영상을 아직 기억한다. 그 영상이란, 무덤 속에 사람이 누워있고 그 무덤 위에서 누운 사람과 아무 상관없이 세상이 즐거이 돌아가는 그런 것이었다. 얼마나 여러 번 같은 이미지가 내 머리 속을 돌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여섯살 어린 나는, 그 무덤 속의 누운 존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싫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결국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 올 것이라는 점을, 외증조할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훗날, 내 기억 이전의 시절에 아무 거리낌 없이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부리던 나를 증조할아버지께서 무척이나 귀여워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기 전까지, 내 기억속의 증조할아버지는, 내게 처음 죽음의 존재를 가르쳐준 존재로서만 의미있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이 지난 지금 새삼 이런 기억을 끄집어 내게 된 것은, 어떤 이의 죽음 때문이다. 나와는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지만 은연중에 매일 얼굴을 대하는 믿음직한 ‘어른’으로 그를 여기고 있었나 싶다. 돌아갔다는 소식과, 그를 추모하는 이런저런 코멘트들과 방송들을 보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용히 쓸쓸하다. 그와 자주 견주어지던 久米宏(Kume Hiroshi)는 자신이 진행하는 갓 시작한 프로그램에서,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말을 흐렸었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지 않은가 싶다. 그 존재를 대신할 이가 없는 사람.

국적과 인종과 민족과 언어를 넘어서, 내가 숨쉬는 땅에서 어른이 한명 사라졌다.

*** *** ***

지난 11월 7일, 금요일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의 한명인 치쿠시 테츠야(筑紫哲也)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TBS 밤 11시 뉴스인 News23의 메인 캐스터로 1989년부터 18년하고 반년을 TV 저널리즘의 최일선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했으며, 우경화되어가는 일본 사회에 끊임없이 경계의 메세지를 발신하던, 일본에 있어서의 이른바 ‘TV 저널리즘’의 확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저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주류 미디어에서 마지막 최후의 버팀목 같은 역할을 하던 이였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폐암 진단을 받고, 그 사실을 자신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밝힌후 치료를 위해 잠시 떠났다가 일시적으로나마 복귀한 것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서울에 가 있던 반년 사이에 자신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그 이름을 빼고 투병했었다고 한다. 복귀할 것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에, 충격이 더할 나위 없었다. 11월 7일 이후, 일주일 가까이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에서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특집 코너를 삽입하기도 하고, 그가 몸담았던 TBS에서는 아예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일흔셋이었다고 한다.

타인의 訃告에, 이렇게나 쓸쓸해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없이도 돌아간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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