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雑念

서울에 돌아와서 한 계절을 보냈다. 다시 떠나기 전에 서울에 대한 감상들을 좀 적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서울 하늘을 온통 다 가려버릴 기세로 솟는 고층의 아파트들을, 돌아와서 처음 보았을 때의 기분을 아직 잊기가 힘들다. 문자 그대로 grotesque.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는 이 ‘그로테스크’라는 단어가, 단지 이상하다는 의미만이 아닌 ‘비극적’이라는 뉘앙스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 단어의 미미한 뉘앙스를 내가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서울 강남을 뒤덮은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며 내가 떠올린 ‘그로테스크’라는 단어에는, 분명 비극적이라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었다.

둘.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라는 박정희의 졸렬한 글씨를 자랑스레 걸어두시던 나의 외조부는, 언젠가 자신이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 해 준 적이 있다. 1960년대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그 시절에, 출장으로 미국을 처음 가서 호텔에 짐을 풀고 창밖을 내다보니, 어두운 저녁 거리에 차들의 헤드라이트 행렬이 끝없이 늘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의 밤 거리도 저런 모습이 될 것을 꿈꾸었노라고, 말하였다. 세계 그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차들이 늘어서 있는 서울에서, 나는 수십 년 전의 나의 외조부가 꾼 꿈이 이루어 진 것을, 조금도 즐거이 여기지 않는다. 글쎄, 어떨까.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그는, 과연 어떠했을까.

셋. 오랜만에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분당이 가까와 오는데, 예전에 보지 못한 거대한 아파트 건물들이 새로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 있는 사람은,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것들이 지어지기 전에는 다들 어디서 살았을까한다. 한강을 넘으며, 멀리 눈에 들어오는 촘촘한 아파트의 불빛들을 바라며, 다시금 같은 생각을 한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서 살고 있었을까.

넷.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대학을 가기 전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었다. 게다가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있는 시절 이후에는 서울은 이따금 찾아가는 도시였고, 나서 단 한번도 도시 밖에서 살아보지 못한 나이지만, 서울은 언제나 내게 ‘도시’의 이미지였다. 어릴 적에는 방학때마다 서울의 외가에 다녀가곤 했다. 그 시절의 서울은, 늘 가고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문득 지금 깨닫는 것은, 내 어릴 적 서울은, 내 어릴 적 도시는, 지금의 그것이 비하면 한없이 소박한 것이었구나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래서 내게 늘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인가 싶다. 지금의 ‘그로테스크’한 서울이었다면, 아마 어린 나조차도 그곳을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 서울 시청 건물의 해체에 대한 찬반의 여부를 떠나서,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니 한국이라는 사회가 무언가를 부수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문화를 가진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만이 최고라는 그런 촌스러움에서, 그래도 이제는 벗어날 만 하지 않은가 말이다.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 전통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손으로 전통을 만들고 세련된 문화를 창조할 때 아닐까. 국제 유가에 좌지우지되는 야경따위나 선전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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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서울 雑念

  1. 피엡의 생각…

    청사 짓겠다고 문화재 헐어버린 서울시 : 파리와 로마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내가 울고 만 이유. 과거의 것들은 모조리 허물어 버린 채, ‘높고 크고 화려한’ 건물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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