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
생존과 존엄이 걸린 문제에 대한 의사표시는, 그 본연의 성격때문에라도, 때로는 그 상대의 태도에 따라서 의도하지 않은 ‘폭력’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2.
‘폭력은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명제는, 사실은 강자의 논리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세계 어디서든, ‘폭력’ –이라고는 하지만 기실 매우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강자는, ‘폭력’따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으며, 또 그 경우 대부분은 훨씬 더 ‘세련된 폭력’이 수반되고, 그 희생자는 대부분 약자들이다.

3.
약자가 강자의 논리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규범’으로 받아들인 사회는 대부분 희망이 없어진다. 그런 사회에서, 강자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강자일 것이고, 약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약자에 머물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 난 그런 사회에서 살았다.

4.
정의로운 사회란 무릇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명제보다 더 억압적으로 강자의 논리가 규범화 되어버리는 것은, 사실 인정하기 싫을테지만, 교육의 힘에 기인한바 크다. 교과서에 한 줄 집어넣고 빼고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교과서의 한두 줄이, 사실은 사회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과장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은 이미 ‘정신적인 노예’이다.

5.
인간의 존엄과 생존보다 더 중요하고 숭고한 가치는 없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만이 준법과 비폭력을 주장하면 된다. 동시에, 그런 주장과 더불어서 스스로가 ‘노예’임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아님을, 또한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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