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1.
비가 제대로 내린다. 서울 오고나서 한 번인가 비가 왔는데, 오늘만큼 제대로 오지는 안았었다. 그래서 오늘 비는 조금 반갑다. 이렇게 오면 조금이라도, 그리고 잠시라도 상쾌해질까 해서 말이다.

2.
선거였다. 맞춰서 온 건 아니었지만 때맞게 온 셈이다. 그리고 투표했다. 내가 투표한 후보는 아마도 고배를 마실 것 같고, 내가 투표한 정당은 참담한 지경이 될 모양이다.

3.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도 덤덤하다. 예상한 결과라서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개인사가 더욱 복잡해서일까.

4.
그러나 생각하면 역시 절망적이다. 한탄이 입술 사이로 세어 나온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무능력과 실패를 감추기 위해 되돌릴 수 없는 짓거리를 벌릴 것이 눈에 보이듯 명확하다는 점이다. 당장에 느끼는 수치와 모멸은 차치하고라도 훗날, 내 자식들과 그 자식들에게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5.
“그리고, 혹은 그래서, 부끄럽구나.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않는 내가,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내가, 삶에 치열하지 못한 내가, 어느때보다도 우울한 나라에서 어느때보다도 행복한, 내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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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2 thoughts on “비가 온다

  1. 귀국해 계신가보군요. 선거날이라…별로 기분 상쾌하지 않은 날 오셨습니다만 와계신동안 즐겁고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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