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日(Zainichi)’는 누구인가

아마도 상대를 할 가치가 없을 어떤 글을 읽었다. 상대할 가치가 없으리라고 하면서도 굳이 이 글을 쓰는 것은, 선량한 이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흔히들 재일교포, 혹은 재일동포라 칭하는 일본에 사는 한국 또는 ‘조선’의 국적을 가진 이들은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북한을 찬양하지도, 북한 지역의 출신이지도 않다. 이들의 98% 이상은 한반도의 남부 –경상, 전라, 제주– 출신들이다. Zainichi(在日, 재일)는, 식민지 시대에 강제 연행을 당했거나 생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일본 땅에 건너가 해방을 맞은 뒤 돌아오지 못했거나 일본에 남기를 택한 이들이다. 이들이 일본에 남은 이유는 물론 각양각색이다. 강제 연행을 당해 일본 열도 각처로 끌려간 이들 중에서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여 해방의 소식을 듣고서도 고향에 돌아갈 아무런 수단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또 일부는 나름대로 간신히 일본 땅에서 생활의 기반을 잡은 차에 해방을 밪이하여 생활 기반이 전무한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보다는 차라리 일본에서 생활하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일단 한반도의 고향에 돌아왔다가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 등의 복잡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그나마 익숙했던 일본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다. 1945년 8월 당시 일본 열도에 생활하고 있었던 한반도 출신자들은 대략 20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 반 정도가 귀국하고 나머지 반 정도가 일본에 남아서 결과적으로 일본 땅의 Zainichi는 100만에 이른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 중 귀화한 수가 약 40만, 현재 한국, 조선의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60만 정도로 추정되며 –정확한 통계는 일본 정부가 발표하지 않기에 알 수가 없다– 이들 60여만의 인구가 이른바 Zainichi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국적 ‘조선’은 북한을 말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니다. 1947년 이른바 외국인령이 일본 정부로부터 발효된 이후 일본 땅에서 생활하던 한반도 출신자들은 의무적으로 외국인등록을 해야 하게 된다. 이들의 대부분은 신청서의 국적란에 ‘조선’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는데 이는 그들이 ‘북한’의 출신이거나 그 정부의 노선에 동의를 해서라기보다는 ‘조선’이라는 단어가 한반도 전체를 가리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조국이 다시 둘로 갈라지는 상황은, 당시 외국에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있어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테고, 그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한반도의 남부지방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는 국적을 선택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사용한 ‘조선’이라는 국적 표기는 국가에의 귀속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에스닉(ethnic)의 기호였던 것이다. 그 후 북한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택함으로써 이들 Zainichi들의 국적인 ‘조선’이 곧 북한이라고 믿어버리는 오해가 팽배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결단코 사실이 아니다. (尹建次, 『「在日」を考える』、平凡社、2001)

결국 195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Zainichi들의 압도적 다수는 ‘조선’이라는 국적으로 생활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80, 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의 압도적인 경제성장, 그리고 1세, 2세 Zainichi들의 고령화 –‘조선’ 국적으로는 고향이 있는 한국을 방문하기가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등이 원인이 되어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고 현재는 약 7대3의 비율 –물론 북한 정부에 대한 회의, 실망이 원인이 되어 조선이라는 국적을 버리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로 한국국적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Zainichi들은 왜 북한과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가. 북한 정부는 1963년, 일본에 남은 한반도 출신자들을 ‘해외공민(海外公民)’으로 인정하는 국적법을 발효한다. 반면 한국의 정부는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며,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협상 과정에서조차 이들의 일본내 권익 신장을 위한 일체의 조치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1965년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됨에 따라 한국국적의 Zainichi들의 처지가 조선국적자들의 그것보다는 나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정부는 199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재협상 –한일 법적 지위 협정에 기초한 협의 결과에 관한 각서– 을 통해 Zainichi들의 권익에 관한 일정정도의 합의를 일본정부로부터 이끌어낸다. 매우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 정부는 1991년에 이르기까지 이들 Zainichi들을 철저히 외면, 소외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그 답이 내가 시종일관 이 글을 통해 사용하고 있는 Zainichi라는 단어이다. 우리는 쉽게 이들을 교포라 부른다. 그러나 ‘교포’라는 말에는 이주, 이민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엄밀하게 이야기해 자신들의 선택을 통해 이주한 이들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을 그저 단순하게 ‘재일교포’라고 불러버리는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왜곡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일본의 학자들 중에는 기계적으로 ‘재일한국, 조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타당해 보이기는 하나 동시에 이 용어는 이들의 현재에 대한 설명만 해 준다. 즉, 이들의 출신, 역사, 배경까지 설명하는 용어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지적이다. ‘재일조선인’이라는 단어는 주로 Zainichi 출신 학자들이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의 ‘조선’은 앞서 설명했듯이 한반도, 혹은 우리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Zainichi들의 역사와 형성과정을 설명하기에는 가장 적확한 용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단어가 일본이나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와 동반하는 현실을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최근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가 ‘재일코리안’이다. 이는 주로 젊은 Zainichi들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말인데, 혹자는 ‘코리안’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Zainichi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킴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일본 사회에서 안고 있는 정치, 사회적 문제들까지도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줄곧 Zainichi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Zainichi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기 위함이며, 동시에 한국인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Zainichi는 Zainichi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당시의 상황을 철저히 무시한 채 무조건 ‘조선’이라는 단어 하나에 반응하는 것은 지극히 무지한 행태며 그 당사자들에 대한 파렴치이기도 하다. 일본에 와서 여러 해를 산 한국인들조차도 실은 이들 Zainichi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고 또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지에 기초한 편협한 비난이 정당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오랜만에 남이 쓴 글에 화가 났다. 무시하면 그만이고 대부분의 경우 무시하고 있지만,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하는 데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홧김에 쓴 글이라 두서도 없고 장황하다. 그저 단 한사람에게라도 오해를 바로잡는 계기가 된다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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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Zainichi)’는 누구인가

3 thoughts on “‘在日(Zainichi)’는 누구인가

  1. 명쾌하면서도 사려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하고 있는 일이 관련된 주제라서 그런지, 더 와닿는 글이네요.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이 무심하게 많이 쓰는 용어가 “조총련계”인 것 같습니다. 저도 얼마전 까지는 그랬구요. 모르는 게 “죄”는 아닐지 몰라도 그게 큰 실례를 낳을 수 있고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할텐데요.

    아 참, 다른 곳에 소개를 해도 괜찮을까요? 요즘 블로그는 거의 못하고 자주 가던 게시판에만 종종 들르고 있는 형편이라서요.

  2. 재일조선인이 남한이나 북한 출신으로 나뉘지는 않는다는 건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죠.그들,혹은 그들의 조상이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은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지기 전이었을 테니까요.재일조선인을 소재로 한 영화 Go!에서 그려진 모습때문에 그러한 오해가 좀 더 퍼진 듯 합니다.인류학을 배울 때 이들에 대해 잠시 배웠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는 이 포스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3. camino says:

    mithrandir/ 말씀대로입니다. ‘조총련’이라는 단체도 사실 같은 맥락이기는 하지요. 단, 그 단체의 정치성을 배제해서도 안되겠지만요. 소개하실만한 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쓰십시오.

    가디록/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무지합니다. 관심이 없는 것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들의 존재가 현재의 한국인, 북한의 주민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일본인들에까지 의미하는 바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외면하고 무시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늘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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