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다

이제 한 두주 쯤 되나보다. 자전거를 한 대 샀다. 학교 다닐 때 쓰려고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하철 역 바로 옆에 있다. 바로 옆이라면 조금 과장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서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이니 말이다. 이곳으로 이사오기로 한 것도 바로 그런 편리함을 생각해서였다. 흔히들 일본은 대중교통 체계가 매우 잘 정비되어 있어 대중교통만으로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실은 도쿄권이나 오사카 등의 일부 지역에만 해당되는 소리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센다이만 해도 인구 100만에, 동북지방의 중심도시라고 하지만 대중교통만을 의지하며 살기에는, 조금 불편함이 있다. 그럼에도 지하철 역 주변을 찾은 것은, 적어도 여기서는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다고 정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이 이리 가까우니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센다이에 와서 처음의 석달 동안 살았던 곳 -버스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나가서 다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다- 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하기는 하다. 그런데, 지하철이 코 앞이긴 하지만, 그 지하철을 타고 나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한 번의 환승이 필요하다. 비록 그 환승 후의 구간이 버스로 10분에 불과한 거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버스에 있다.

일본의 버스는, 아니 적어도 센다이의 버스는,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기는 하다. 물론 한계는 있다. 어차피 버스라는 게 도로 위를 달리는 물건이고, 따라서 도로 사정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을 잘 지키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과 관계없이 그 버스 자체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 출퇴근 시간에는 제법 있지만, 일반적인 평일 오후 같은 시간에는, 많은 구간의 경우 한시간에 너다섯 대, 적은 구간은 서너 대가 보통이다. 그러니 단순 계산으로 20여 분에 한 대 정도 씩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한 대를 놓쳐버리면 짧게는 10, 20여 분, 길게는 30여 분을 기다려야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늘 그 버스 시간을 체크하며 오갈 수 밖에 없다.(이런 사정이니 버스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서울에서는 운전을 했었다. 술을 안 하기 때문에 -이것도 실은 담배와 더불어 끊었다- 운전을 삼가할 ‘절대적’ 이유가 없었던 탓으로, 집을 나서면 언제나 내 차였다.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 교통수단과 아무 관계없이 살기를 오래였기에, 센다이로 이사온 뒤 -센다이로 오기 전에 살던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야만했다. 그래서 일본 면허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려니 처음에는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불편한 느낌이야 곧 사라져버리긴 했지만, 이동하는 시간과 타이밍을 내가 자유로이 통제하지 못한다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느끼는 부자유에는, 1년이 지나도록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어쩌면 그런 사소한 일에서 부자유 운운하는 나의 감각이, 감수성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반성은 일단 접어두고 이야기를 이어가자.

어찌되었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세운 원칙 -가능한한 운전은 하지 않겠다는- 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로 센다이라는 도시 역시 기본적으로는 자동차 교통 중심의 도시이고, 유학생들도 많은 경우 -특히나 나처럼 ‘가족’ 단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운전을 하는 실정이기는 하다. 즉, 교외의 집세가 싼 집에 살면서 대신에 차로 이동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하철 역 옆의 지금 우리집은, 일반적인 ‘유학생’들이 살기에는 조금 집세가 비싼 편이기는 하다. 결국 우리는, 운전을 택하지 않는 대신에 조금 비싼 집세를 감수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지금 이 집으로 이사 오고나서도 1년이 지나고 있었다.

한 두달 전부터 몸이 찌뿌둥하다는 느낌이 지속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배도 점점 앞으로 튀어 나오고, 그 뿐이면 상관없는데 그냥 몸 상태가 상쾌하지 않은 느낌이 연일 사라지지 않았다. 공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역시 집 옆의 삼림공원 -이 공원도 도시 한 복판에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치 숲이 울창한, ‘본격적’인 산책로이다- 에 운동을 나가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길 때면, 그 핑계로 빼 먹게 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또 그냥저냥 흐지부지 되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생각이 미친 것이 자전거였다.

사실 학교에서부터 집까지의 직선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오려면, 걸어서 10여분 이상이 걸리는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도 한번 자전거를 생각하다가 포기한 것이 바로 그 오르막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 길을 걷다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자전거를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은 주지의 것이다. 실제로 같은 연구실의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에서는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자, 매우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 다 우연히 집에서 지하철 두정거 떨어진 지하철 역에 환승용 주륜장(駐輪場)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한달 정기권이 천엔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라면 힘든 오르막도 없고, 지하철, 버스를 이용한 교통비가 하루에 800엔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달에 천엔은 사실 무지하게 싼 것이었다. 필요한 것은, 꾸준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것인가 하는 나 스스로의 의지에 대한 확신뿐이었다.

하루를 갈등하고, 샀다. 여름이라 땀도 나고, 장마철이라 비를 맞기도 했고, 역시 아직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잘 했다는 기분이다.

특히나 학교에서 한번에 -그 주륜장은 정기권을 더이상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세우려면 매일 하루치 요금(50엔)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집까지 돌아와 그대로 샤워를 하고 앉으면, 덥고 힘들기는 커녕 상쾌하기가 비할 바가 없을 정도이다. 학교에 갈 적에도 시간이 조금이나마 덜 들기에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나의 움직임을 다시 통제하게 된 것이 반갑다. 더구나 그 통제란 것이 오로지 내 다리의 힘에 의지한 것이기에 건강하고, 보람있다.

며칠 전부터는 컴퓨터에 있던 음악파일들을 옮겨 자전거를 타며 듣는다. 즐거움이 하나 늘어 난 기분이다. 그래서 실은 최근 새로 나온 iPod를 살까 궁리하고 있을 정도이다. 오가다가 가끔 시간이 있으면 옆길로 새기도 한다. 그래서 보지 못한 동네들을 돌아보며 구경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리저리 페달을 밟고 있으면, 그 순간 자유로움의 극치 -라고 하면 조금 과장일까- 를 느끼기도 한다.

장마가 지나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테고, 그러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정작 가장 더울 때는 학교도 방학이니 지금처럼 자주 연구실에 나가지 않아도 될테고, 한겨울이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겨울 일은 겨울이 되어 생각하자 싶다. 그래서, 다시 되풀이하지만, 잘 했다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자연스레 운동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이 기쁘다. 이젠 굳이 공원에 나가 달리지 않아도, 빼 먹은 날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사실 운동을 따로 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불건강한 생활의 반증임을 생각할 때, 그러한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생활의 시작이 아닐까. 가장 이기적인 이유 -스스로의 건강과 생활을 위한다는- 로 시작한 일이라 부수적인 즐거움들이 없었다 해도 계속했을 일이기도 하지만, 예상하고 상상한 이상의 것들이 얻어지니 적어도 당분간은 운동부족의 걱정 없는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여섯살, 유치원 다닐 적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 돌던 기억이 스친다. 서울 집 어딘가 낡은 앨범 속에, 그 모습이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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