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9

1.
어제 밤에 뜻밖의 메일을 받았다. 두어달 전 부터 어찌어찌하여 약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작은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의 선생으로부터의 메일로, 급한 번역을 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훑어보니 그리 길지도 않고 반나절 정도면 충분히 할 것 같아 수락을 하였고, 그 번역을 좀 전에 끝냈다. 전체적으로 그리 어려운 글은 아니었지만, 한두군데 일본어 특유의 표현 -그래서 그대로 옮겼을 경우 매우 부적절한 한국어가 되는- 이 있어 약간 고민도 했고, 게다가 내가 스스로 하는 번역과는 달리 남의 부탁을 받은 것이라 조금 더 철저히 하려 했다. 그렇게 끝내고 나니, 글 내용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것이고, 또 개인적으로도 반나절 정도 투자한 것이라는 생각에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래도 조심한답시고 스크랩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그러고 한 5분, 아차 싶어 급히 글을 비공개로 돌렸다. 이 무슨 바보짓인가. 그 글의 공개로 인해 실제로 그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난 그것을 ‘공개’할 아무런 권리가 없지 않은가. 번역은 내가 했다고 해도, 그 글이 어떤 형태로, 어디에 실리게 될 지도 정확하게 알 지 못하면서 그 온전한 전문(全文)을 공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될 일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글을 공개했던 것인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잠시, 아주 잠시 정신이 나가 있었나보다.

2.
생각해 보면, 생활에서 블로그가 가지는 영역이 점점 확대되어 가는 것 같다. 위에서 이야기한 정신빠진 짓도, 실은 그래서가 아닐까. 이제 한두달이 지나면 나의 블로그 생활도 1년이다. 끊임없이 흥미를 놓지 않은 채, 스스로를 정리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배우고, 생각하며 지나왔다. 그렇게, 그 좋은 점만을 내세웠다. 그런데 문득,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3.
어제 밤에 공부방을 치우고 새로 정리했다. 오랜만에 거실이 아닌 책상에서 글을 쓴다. 집중되고, 좋다.

4.
마지막으로, 오늘 흐리다. 심지어 선선하기까지 하다. 여름은, 적어도 아직 이곳 센다이에만은, 오지 않고 있다.

Advertisements
잡담, 9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