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와 파괴를 수반하는 배려(?)

주말입니다. 게으름 피우다 잠시 집앞의 편의점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4층에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편의점에 가려고 나서서 엘리베이터 앞에 가 보니 3층에서 내려가는 중이더군요. 날도 쌀쌀한데 기다리기도 귀찮아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엘리베이터보다 그다지 많이 늦지는 않았는데 1층에는 아무런 기척도 –아, 물론 타고 내려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급히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층 로비의 자동문이 조용한 걸로 보아서 아마도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없었습니다. 제가 사는 맨션의 엘리베이터는 사람이 내리고 나면 자동으로 1층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누군가 윗층까지 타고 올라간 뒤에 엘리베이터가 저 혼자서, 아무도 태우지 않고 내려가고 있던 모양입니다.

편합니다. 집에서 나갈 적에야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만, 일단 집에 들어올 때는 –피곤한 경우도 있고– 딱 1층에 서 있는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 편하기야 하지만, 이게 과연 좋기만 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작년의 언젠가의 일입니다. 어쩌다 들어간 오마이뉴스 사이트에서 짤막한 일본 관련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마 일본에서 생활하는 누군가의 제보거나, 혹은 일본에 체재하면서 오마이뉴스의 ‘통신원’ 같은 성격의 일을 하는 사람의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하게 기억을 되살릴 수는 없습니다만, 강변의 공사를 하면서 보행자를 위한 ‘배려’의 일환으로 임시이나마 보행자용 도로를 만들고 –아스팔트 포장까지 한– 공사관련 안내도 자세하고 정성스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내용의, 말하자면 ‘일본은 이런데 우리는 뭐냐’는 식의 짤막한 –여러 장의 사진을 곁들인– 기사였습니다. 글쎄, 과연 그렇게 ‘칭찬’만 할 일일까요?

공사를 하면서 보행자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배려라는 명분으로 조만간, 공사가 끝나는대로 걷어내야 할 아스팔트 포장까지 하는 것은 –단지 포장만이 아니라 그 짧은 길을 위한 다른 시설들도 물론 있겠지요– 제게는 과도한 짓거리로 보입니다.

먼저, 비용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적은 액수라고 하더라도 그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공사를 위해 자재들이 동원되었을테고 사람 손이 필요했을 것이며 그를 위한 돈, 시간 등의 비용들이 필요했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 부차적인 비용들을 더 들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사회 전체로 보자면, 오히려 그런 비용들이 보다 유익한 곳에 쓰이는 것이 더욱 좋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다음으로는 굳이 포장까지 해야 하는냐의 문제입니다. 포장을 하기 위해서는, 잘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풀과 꽃들을 꺾거나 잘라야 – -자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차피 아스팔트 밑에 깔리면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겠지요. 사람들 입장에서야 하찮은 잡초, 길가의 아무데서나 볼수 있는 야생의 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잘려지는 풀과 꺾이는 꽃들에게는 세상 전부가 한 순간에 끝나는 사건일 겁니다. 과연, 인간의 작은 편의를 위해 이름없는 생명들을 ‘말살’하는 것이, 선전하고 칭찬할만한 일일까요?

일본 사회는 확실히 우리네보다는 개인들 –소비자들– 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배려들이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배려를 뒤집어보면 결국 과도한 물질의 소비를 기반으로 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소비하고, 또 소비하여 끝내는 낭비하고, 궁극에는 자신의 사회를, 아니 그 전에 남의 사회를 파괴해 버릴 그런 소비지향문명의 전형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요? 마치 입안의 혀와 같이 사람 구미에 맞게 굴지만, 그 모두를 누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루고 있는지 사실 곰곰히 되돌아 볼 일입니다. 당장에 앞서 말한 엘리베이터만 해도, 사람을 태우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만큼의 전기료도 결국에는 저를 비롯한 입주자들이 부담하고 있겠지요. 결코 싸지 않은 집세의 일부는 바로 그런, 어찌보면 ‘배려’라고도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낭비’에 불과한 행위를 위한 것일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예전에 보았던 오마이뉴스의 기사에 찬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과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그 기사를 계기로 오마이뉴스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차치하고라도 그런 기사를 올리는 편집진들의 사고와 가치에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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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 우리가 배울만한 점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배울만한 것들 중에 저런 ‘과도한 배려’는 없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껏 우리 사회가 일본이나 미국 등의 보다 물질적으로 윤택한 산업사회를 모델로 하여 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줄창 그러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네들의 실패와 헛점, 그리고 그 부조리들을 보고, 분석하여 우리의 새로운 지향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얼마가 되었다는 식의 지향이 아닌, 얼마나 우리네 사회가 인간적이며 사람들이 살 만한 곳인가, 얼마나 생명을 존중하며, 불필요한 낭비와 파괴를 거부하는 사회인가를 자랑스레 말할 수 있기 위한 지향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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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와 파괴를 수반하는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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